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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주역사] <로마의 선물 그리고 진격의 수도원>-중세 맥주의 시작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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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주역사] <로마의 선물 그리고 진격의 수도원>-중세 맥주의 시작

beergle 2013. 6. 13. 19:39

맥주 관련 블로그라 쓰고, 세계사 관련 블로그라고 읽다...


맥주의 유래나 역사를 파고들다보니, 자의반 타의반 세계사를 한번 훑게 되네요. ^^ 사실, 이것 또한 맥주를 즐기면서 너무 재미있는 부분입니다. 맥주가 그만큼 인류의 역사, 그리고 유럽의 역사와 함께 해왔기도 하지만, 독일 맥주의 라벨에서 보는 성자들의 모습이나 이름 또한 이런 전반적인 세계사에서 왔거든요. 




이 맥주 아시죠? 독일의 대표적인 밀맥주 (헤퍼바이젠) 중 하나인 파울라이너. 자세히 보신 분을 알겠지만, 이곳도 수도원에서 시작된 맥주입니다. 아... 이 파울라이너 헤퍼바이젠을 살짝 차게해서 전용잔에 마시면 여름에 갈증은 한방에 해결입니다!!! 캬~


지난 포스팅에서 로마시대의 맥주에 대해서 다뤄봤는데요. 맥주를 천시했던 로마인들은 아이러니하게도 맥주의 발달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무슨 말이냐구요?

자 진짜 흥미진진한 맥주의 뒷이야기, 출발합니다~


로마제국의 전성기에는 영토가 이렇게 넓게됩니다. 지중해를 자신들의 호수로 만들어버렸죠~



전에 보여드렸던 사진인데, 다시 소환했습니다~ 현재 영국인 '브리타니아' 지역부터 동방의 터키지역까지 정말 넓디 넓은 지역을 지배했죠. 이 넒은 지역을 다스리기 위해 엄청난 '도로'를 건설했다는 것도 말씀드렸습니다. 


로마의 선물이 두가지가 있다고 하는데, 뭔지 아세요? 


바로 '와인' 과 '도로' 입니다. 맥주와 로마의 관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기독교'의 전파에 대한 이해가 필요합니다. 로마에서 기독교를 인정하고 발전시킨 황제가 누군지 아시나요? ㅋㅋㅋ


세계사 시간에 언젠가...한번은... 들어보셨을 '콘스탄티누스' 황제입니다. 

306년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즉위한 뒤, 그는 절대적 통치로 로마의 위세를 만방에 떨쳤습니다. 제국이 너무 넓었기에, 로마는 서방과 동방으로 나뉘어서 지배하게 되었는데요.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서방인 브리타니아(영국), 게르마니아(독일), 갈리아(프랑스) 등 서방지역을 다스렸습니다. 엄청난 위세를 떨쳤다고 해요. 동방은 리키니우스라는 또다른 황제가 선출되어 다스리게 되었죠. 



콘스탄티누스 황제



313년, 드디어 그 유명한 '밀라노 칙령'이 공포됩니다. 서방의 콘스탄티누스와 동방의 리키니우스는 밀라노에서 만나 '기독교'를 인정하고 박해하지 않기로 약속을 하고 공포합니다. 그 뒤,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많은 수도원을 짓고, 로마제국 전역에 기독교를 보급하기 위해 노력을 했습니다. 이런 기독교 보급의 이유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는데, 그 중하나는 야만족들에게 기독교를 보급하여 자신이 신의 휘하에 있는 황제임을 알려서 통치를 안정시키려고 했다네요.


324년, 서로마의 콘스탄티누스 황제와 동로마의 리키니우스는 로마제국의 '절대지존' 자리를 놓고 일대 전투를 벌입니다. 사업에서 동업이 힘들고, 하나의 하늘에 두개의 태양이 공존할 수 없듯이.. 동맹관계였던 이 둘도 결국 혈투를 벌이게 되지요. 


결론은요? 뭐, 콘스탄티누스가 이겼죠. 그러니 우리나라 역사책에도 나오는 거 아니겠음? '리키니우스'라고 들어본 적 있음? 


콘스탄티누스의 영향으로 인해, 로마제국에 전역에 기독교가 보급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수도를 동로마지역의 비잔티움으로 옮기고, '콘스탄티노플'로 바꿉니다. 이후, 로마의 중심은 '콘스탄티노플'이 되죠.


콘스탄티노플이 보이시나요?


콘스탄티노플은... 지금의 터키에 있네요. 이후,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337년에 죽고, 이후 동서로마를 마지막으로 통치했던 테오도시우스 (379년~395년)가 죽자, 로마제국은 서로마와 동로마로 완전 분리되고 맙니다. 각 지역을 다스리는 황제는 두명이었지만 기독교 우두머리인 교황과 왕권도 분리가 되어 있었기에 교황은 계속 '로마'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비잔틴 제국이라 불리던 동로마는 이후 1000년을 이어가고, 서로마는 간신히 유지되다가 476년 게르만족의 장군인 '오도아케르'에 의해 멸망하고 맙니다. 이 후, 서로마는 게르만족들이 장악하게 되고, 게르만 족의 일부분인 '앵글로 색슨'은 브리타니아, 즉 영국으로, 나머지 게르만족들은 크고작은 왕족들을 세우게 됩니다.



비잔티움(동로마)와 서로마 제국, 그리고 게르만족의 이동


자, 이제 맥주 이야기로 돌아가볼까요? 로마인들은 맥주를 천시했지만, 게르만 족은 어땠죠? 넹넹~~~


게르만족은 beer heavy drunker 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맥주를 얼마나 마셔댔는지, 맥주 없으면 큰일나는 민족이었어요. 일어나서 사냥갔다가 맥주먹고, 돌아와서 사람들 만나서 이야기하면서 또 맥주먹고...취해서 넘어지고...


그런 게르만족들이 서유럽의 곳곳을 '진격'했다는 거 아닙니까. 위에 지도에서도 보이시죠? 그런데, 그당시 맥주는 가정에서 만들어 마시는 음료였습니다. 우리나라 김치와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될까요?


집집마다 만들어 마시고, 남으면 친구들 불러다가 마시고 그랬습니다. 왜냐구요? 


맥주는 발효식품이었고, 당시에는 저장기술이 발달하지 않았기에 빨리 마시지 않으면 다 상해버렸으니까요. 이 당시 맥주는 모두 에일(Ale)맥주였습니다. 나중에 자세히 설명하겠지만, 단기간 고온에서 발효해서 마시는 맥주지요. 막걸리 생각하시면 되겠네요. 만들면 빨리 마셔야 했습니다. 


당연히 품질이나 맛, 이런 것들이 표준화되지도 않았고, 제조기술도 제각각이었죠.

이랬던 맥주의 품질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는 계기가 찾아옵니다.


이즈음에서 '카를로스' 대제를 언급할 시기가 온 거 같아요. 


다시 세계사로 돌아가보죠. 동로마는 정통 '로마제국'으로 지속된 반면, 서로마는 멸망 후, 수많은 나라들이 난립하기 시작했습니다. 교황은 '로마' 있구요. 서로마 황제가 없으니, 교황은 동로마 황제의 밥이었죠. ^^;; 


481년, 현재 서유럽의 근간이 되는 중요한 국가가 나타납니다. 이름하여 '프랑크' 왕국. 

410년 로마인들이 영국에서 완전히 퇴각한 이후, 영국은 '앵글로 색슨'족에 의해 독자적으로 걸어간 반면, 게르마니아(독일)와 갈리아(프랑스)에는 많은 국가들이 나타나는데, 이 중 하나가 '프랑크' 왕국입니다.


 '메로빙거' (이름도 이상해..)왕조에 의해 라인강 유역에 세워진 프랑크는 갈리아(프랑스)지역을 정복하면서 그 세를 넓혀갑니다. 그러나 메로빙거 왕조는 그 후 힘을 못쓰고 겔겔거리다, 751년 귀족 중 하나인 '피핀3세'가 메로빙거 왕조의 왕권을 찬탈하고 새로운 왕조에 오르죠. 그리고 '카롤링거' 왕조를 세웁니다. 나라 이름은 그대로 '프랑크'에요. 우두머리만 달라졌지.


그런데, 그렇잖아요. 무력으로 왕위를 찬탈하고 '내가 왕이다' 하면 누가 인정해주나요? 이 당시에는 왕권이 강하지 않았고, 각 지역 군주와 교회에 더 힘이 있었거든요. 그런데 이때!!  당시 이태리 북부의 '롬바르드족''의 공격을 받고 무서워하던 교황이 힘이 있었던 프랑크 왕국으로 와서 도와달라고 합니다. 공식적인 왕의 '직함'이 필요했던 피핀3세는 교황을 도와 도와주고 '왕'을 인정받습니다. 


그럼 카를로스 대제는 누구인가? 바로 프랑크 왕국에 카를링거 왕조를 세운 '피핀3세'의 아들입니다. 768년, 왕권을 이어받는 카를로스 대제는 영토확장을 통해 과거 서로마제국의 대부분을 지배하게 됩니다. 카를로스 대제, 혹은 샤를마뉴 대제라고도 불립니다. 서유럽 사람들은 카를로스 대제는 현재 서유럽의 기틀을 세운 '유럽의 아버지'라고 여기죠. 왜냐...


그는 기독교를 전파시키고 주변 제국들을 자기 앞에 차례차례 무릎을 꿇게 하여 정치적으로도 안정을 시킵니다. 그리고 역사적인 사건이 일어나게 되는데....



바로, 로마의 교황에 의해 서로마제국의 '황제'로 등극하기 때문입니다. 이 당시, 교황은 '동로마제국'의 성상숭배문제(마리아 동상에 기도하는, 뭐 그런거)로 갈등을 겪고 있었습니다. 동로마에서는 이 '성상숭배'를 금지해야 된다고 했죠. 반면 교황은 자신의 정치적 목적으로 '성상숭배'가 필요했기에 극심한 갈등을 겪게 됩니다. 


결국... 동로마(비잔티움) 황제는 '성상숭배'를 금지시킵니다. 이에 교황(레오3세)은 위협을 느껴 자신을 지켜줄 빽이 필요했죠.  또 그동안 자신을 밥으로 취급했던 동로마의 지배에서 벗어나고 싶었기에 카롤루스 대제에게 정치적 거래를 제안 합니다.


"카롤루스야, 내가..너 서로마제국 황제라고 공식 인정할테니까... 나 좀 지켜줘...존나 무서워...사랑해5"



카를루스 황제의 로마에서 제관 수여장면 (800 12월 25일)


카롤루스 대제 또한 자신의 지배력에 대한 정통성을 확보하고 싶어, 그 제안을 수락하죠. 그래서 프랑크의 카롤루스 왕은 서로마제국의 정통성을 잇는 '황제'가 됩니다. (물론 동로마 제국에서는 인정하지 않았죠. 황제 존재는 인정했지만, 과거 로마제국의 정통성은 인정하지 않았다고 하네요)


카롤루스 황제... 서유럽 대륙의 일인자!!! 



카를로스 (샤를마뉴) 대제



왜 그가 맥주와 관련있는가???!!  왜냐하면 서유럽의 일인자인 그가 굉장한 맥주러버였다는 겁니다. 그리고 맥주 양조를 장려하고 기술을 보급하며 품질 또한 체크했다는 거죠. 


카롤로스 황제 (사를마뉴 황제)에 의해 저급한 술로 천시받던 맥주가 게르만의 자랑스러운 술로 여겨지기 시작합니다!!!


"대제는 수도 아헨(Aachen)을 문화, 교육의 중심지로 만들기 위한 사업을 벌인다. 교육 설비를 갖춘 교회를 세우고, 각지에 수도원을 건립하였다. 그 일의 목적 중 하나는 기독교의 포교 활동이었고, 다른 하나는 수도원 기반의 정치조직을 만드는 것이었다." 


(출처 : 맥주, 문화를 품다. 무라카피 미쓰루, 이현정 옮김)


카를루스 황제는 자신의 신하를 수도원장으로 파견하고 그에게 세속적인 위치인 '영주'의 자리를 보장했습니다. 그는 각 지역에 교회, 방앗간, 빵집, 마굿간 그리고 양조장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각 지역의 맥주 양조를 지원하기 시작했죠. 그리고 자신의 정치적, 종교적 거점인 수도원을 정기적으로 순회하였는데, 이 때 세금을 돈이 아닌 그 지역 과일이나 맥주로 받았다고 합니다. 그러니 황제가 한번 방문하면 어땠겠어요? 난리가 났죠. 음식하랴, 맥주 만들랴, 간식 준비하랴...ㅋ


그는 수도원을 방문해서 이렇게 말했다고 하네요.


"맥주 양조하는 감독관이 맥주 샘플을 가져올 때, 항상 그 맥주를 만든 사람을 대동하라. 그래야만 그가 좋은 맥주를 만들 것이다"

"감독관들은 맥주를 만드는 사람의 손을 점검하고 항상 깨끗하게 해야하느니라"

"맥주 리스트를 준비하라. 그러면 그 시기에 어떤 맥주가 얼마나 있는지 알 수 있으니"


(출처: http://www.germanbeerinstitute.com/history.html)

 

당연히 수도원의 양조 시설이나 실력을 엄청 발전할 수 밖에 없었지요. 카를로스 황제는 789년 모든 수도원에 학교를 설립하라고 지시합니다. 교육, 정치 그리고 맥주... 수도원은 그 모든 것의 중심이 됩니다.


칼를루스 황제가 죽고 난 후, 세 아들에 의해 프랑크 왕국은 세 나라로 갈라지게 됩니다. 서프랑크, 중프랑크, 동프랑크.


서프랑크가 프랑스가 되고, 동프랑크가 독일이 되죠. 중프랑크는 이태리 지역이구요.



카를루스 황제가 '유럽의 아버지'라고 불리우는 까닭을 아시겠지요? 프랑스와 독일은 사실 한 나라에서 나뉘어졌어요. 이후, 동프랑크는 오토1세가 또 다시 공식적으로 교황에게 황제 지위를 부여받아 '신성로마제국'으로 불리우지요. 


그럼, 맥주의 본고장 중 하나인 '영국'은 어떠했을까요?


영국은 410년 로마가 완전히 퇴각한 뒤, 5세기경, 게르만 족의 일파인 '앵글로-색슨'족에게 장악당합니다. 여러 국가가 세워지고 내전이 일어나죠. 그리고 9세기경, 웨식스 지역의 알프레드 왕에 의해 통일됩니다.


영국 또한 맥주(Ale,에일)은 집에서 담가먹는 음료였습니다. 그런데 이 지역도 수도원에 의해 맥주가 발전되기 시작합니다.


597년 당시 교황이었던 그레고리우스 1세는 브리튼(영국)에 관심을 가졌고, 성 안드레아 수사들을 이곳에 파견하였습니다. 이들 40명은 켄터베리에 수도원을 세우고 기독교를 전파하게 되죠. 



교황 그레고리 1세


로마의 수도사들은 맥주를 좋아할까요? 와인을 좋아할까요? 

당연히 와인을 좋아했겠죠. 그러나 영국은 포도를 재배할 수 있는 조건이 아니었고, 있는 것이라곤 게르만 족의 일파인 앵글로 색슨족이 마시는 품질 나쁜 맥주뿐이었습니다. 


하는 수 없이 수도사들은 자신의 수도원에서 와인대신 곡주를 마시게 되고, 맥주를 양조하게 됩니다. 

이것이 수도원에서 양조되는 맥주의 시초라고 여겨지고 있습니다. 

(카를루스 황제보다 앞서 제조하기 시작했죠?)






이후 유럽에 기독교가 정착되기 시작하면서 유럽 전역에 수도원이 세워지게 됩니다. 그리고 수도원에 방문자가 늘기 시작하고 수도원은 방문자를 위한 맥주를 양조하게 되죠. 영국에서는 당시 맥주를 '에일'이라고 불렀고, '에일'이라하면 전통적인 맥주라고 생각하셔도 될 것 같습니다.


당시 맥주(에일)은 누구나 마실 수 있는 음료였고,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심지어는 거렁뱅이에게 까지도 나누어주는 것이 관습이자 미덕이었습니다. 수도원을 방문하는 사람이 늘수록 수도사들은 양조량을 늘려갔고, 노하우도 쌓이게 되었죠. 특히, 절제된 수도사들의 생활과 노동을 중시하는 기도교적 정신으로 맥주 품질은 향상 되고, 노하우도 쌓이게 됩니다.


기독교를 인정하고 전파한 로마인들!!! 이들 덕에 맥주 품질과 문화에 일대 혁신이 시작되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그 배경에는 와인의 대체품에 대한 수도사들의 열정이 있었기에 가능했죠~


슈퍼맨


또하나 로마인들의 선물이 있습니다. 바로 '도로'!!


로마제국의 전성기 때 만들어진 도로는 로마인들의 통치를 위한 최고의 수단이었습니다. 로마는 그 원대한 제국을 잘 닦인 '도로'를 통해 지배했죠. 카를루스 황제도 이 도로를 따라 왕국을 다스리지 않았을까요? 결국 로마인들이 만든 도로는 맥주 양조기술을 발전시키는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그리고...그 먼거리를 갈 때, 필요한게 뭐가 있을까요? 


바로, '휴게소'(tavern)!!! 그리고 여관(inn)!!!


Tavern은 '선술집'이죠. 이는 'Taverna'라는 라틴어에서 왔습니다. 이 타번은 로마인들의 목을 축여주거나 음식을 주는 고마운 곳이었습니다. 그리고 하룻밤을 머물 수 있는 여관(Inn)의 존재도 로마인들이 건설해놓은 도로를 중심으로 시작되었죠.

초창기에는 타번이나 인의 구분이 없었다고 합니다. 후에 상업이 발달하면서 선술집(타번), 여관(인), 레스토랑으로 구분되기 시작했죠.






여담으로 과거 유럽에서는 찾아오는 손님을 그냥 보내는 건 큰 실례라고 했다네요. 우리도 그렇죠? 지나가던 손님이 찾아와 음식을 청하면 대접해주고, 맥주도 주고 하는게 당시 문화였답니다. 심지어는 걸인이 오더라도 그냥 쫓으면 안되고, 맥주 한잔이라도 줬다고 합니다. 물론 그 맥주는 가장 저급, 걸르고 거른 맥주였지만요. 


그만큼 맥주는 우리네 김치나 막걸리처럼 집에서 항상 담가놓는 음료였습니다. 선술집이나 여관, 게스트하우스 등이 바로 이런 풍습의 원형에서 출발한 것입니다. 


오늘 포스팅은 이래저래 좀 길어지네요~ ㅎㅎ


오늘은 여기까지 해야겠네요. 


맥주 역사는 이후 이 수도원과 더불어 쓰릴 만점, 드라매틱, 흥분 킹왕짱 스토리가 전개됩니다. 


담 포스팅에는 뭐가 좋을지... 고민해봐야겠네요. 


P.S. 요즘 마트 가시면 Ale 이라는 맥주를 보실 수 있어요. 이는 Larger와 구분되는 맥주의 종류인데요. 18세기 Lager가 개발되기 전에 인류와 함께 했던 모든 맥주는 Ale 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위에서 언급한 맥주는 모두 Ale 입니다. 다른 포스팅에서 같이 정리해보죠. 아마 저나 여러분들이 지금껏 마셔왔던 황금색 맥주는 모두 Lager라고 보시면 되요. ㅎㅎ


이건 나중에 더 쉽고 자세하게~~~